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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 보고서 : 인문적 삶을 위한 실천적 지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우는

‘인문적 삶의 실천적 지혜’

소크라테스의 ‘캐물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탈레스에게는 ‘최초의 철학자’라는 명칭을 부여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탈레스는 신화적인 초자연적인 원인들을 개입시키지 않고, 물질적 원인들을 통해 자연현상의 기원과 본질을 설명하는 시도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철학자였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자연에 대한 탐구로부터 관심을 돌려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헤겔은 [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개인이다. 그는 정신이 자체내에서 획기적인 혁신(전환)을 이루도록 하였고, 또한 이러한 혁신(전환)을 사상의 양식으로 표현하였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사물의 본성을 사유했지만, 사유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유 자체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수행했으며, 비로소 인간은 정신적 사유의 주체이며, 영혼의 탁월함을 담지한 영혼의 주체임을 드러내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하면서 소크라테스를 혁신의 철학자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탈레스부터 소크라테스 이전까지의 철학자들을 통칭해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더 이상 이론적 탐구나 지적인 유희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인간의 실존적 삶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게 하였으며, 실천적 적용의 관점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좋은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탁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캐물음의 길을 밝히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3가지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영혼의 탁월함과 위대함에 대한 관심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외모와 건강등 신체적인 탁월함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경제적인 부요함에 대한 관심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3가지의 관심 사안 중 우리가 가장 집중해야 할 이슈는 ‘영혼의 탁월함’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갖고, 돌보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지, 자신의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에의 배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영혼의 탁월함을 돌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캐물음(exetasis)을 했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고발을 당하고 법정에 서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배심원과 변론하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탁월함(arete)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론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탁월함(arete)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배심원들에게 필요한 탁월함(arete)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올바른 안목이라고, 아울러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허위의식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탁월함을 위한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철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은 그들 자신이 현명하고 탁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통해서 그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 즉 지혜롭지 못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캐물음의 과정을 통해 도왔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캐물음의 과정이 실상 아테네의 시민들에게는 굉장한 불편과 고통을 주었으며, 심지어는 아주 고약하고 심각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그것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도록 법정에 고발하게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 받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영혼의 탁월함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삶이며, 아테네의 시민들이 캐물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데스트니(destiny)이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회피하지 않고 선택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수 없다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최후 진술을 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캐물음(exetasis)’은 일반적으로 ‘성찰함(reflection)’, 혹은 ‘검토함(examination)’ 등으로 번역되지만, ‘exetasis’의 본래적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캐물음(exetasis)’이란 내가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게, 이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는 게, 내가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정말 나의 영혼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이며, 나의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삶인지에 대해서 캐물어가는 과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캐물음은 한 번 두 번 생각하는 게 아니며, 아침, 점심, 저녁 정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혹은 열 번, 백 번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캐묻는다는 것은 나의 인지적인 능력으로, 내면적인 능력으로 더 이상 파고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캐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철학함이란 ‘캐물음’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철학자의 이야기를 외워서 사용하거나, 현학적이고 우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이 내 영혼의 간절함에 대한 응답이며, 내 영혼의 탁월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캐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하며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캐물음의 삶이며, 캐물음을 통해서 우리는 비본질적인 삶에서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캐물음(exetasis)이 없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캐물음’의 삶을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했으며,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 법정의 판결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재물은 최대한으로 많아지도록 마음을 쓰면서, 또한 더 큰 명성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을 쓰면서, 정작 자신의 지혜와 영혼의 탁월함을 위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며, 아테네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캐물음을 한 것은 정당한 삶이었다고 변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재물과 명예로 우리가 탁월해(arete)지는 것이 아니라 탁월함을 먼저 갖춘 다음에 재물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삶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to be continued…

계속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보고서를 다운 받아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SIG 보고서 다운받기 –> SIG보고서_인문적 삶의 실천적 지혜_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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