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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리더십 철학 1 – 퀴베르네시스(조타술)

플라톤의 리더십 철학 1

플라톤은 [크라튈로스]라는 대화편에서 “‘안트로포스(anthropos)’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은 다른 짐승들과 달리 자신이 ‘본 것(theoria)’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하고, 헤아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399C)”고 했다. 서양 사상사의 큰 바다를 이루고 있는 플라톤의 방대한 철학에서 제한적이나마 ‘리더십(leadership)’의 의미를 2번에 걸쳐 자세히 관찰하고 헤아려보고자 한다.

‘리더십(leadership)’을 글자 그대로 풀어 보면, ‘배가 목적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도록 조정하는 사람(lead – er – ship)’을 의미한다. 즉, 키잡이를 말한다. 리더십의 원형은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잡이의 역할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더는 “배가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키를 조정하는 조타술의 능숙자”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는 ‘아테네를 항해할 때 아폴론이 화살을 쏘아 달리는 배의 키를 두손으로 잡고 있던 키잡이 오네토르의 아들 프론티스를 죽여버렸네. 폭풍이 날뛸 때 배의 키를 잡는 데는 인간의 종족들 중에서 그가 정말 뛰어났었는데…(3권 280)’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항해와 탐험의 시대라고 일컫는 중세와 근세 이전인 고대로부터 항해는 인간의 중요한 삶이었고, 특히 평상시에서 만이 아니라 ‘폭풍이 날뛸 때’ 배의 키를 탁월하게 조정하는 능력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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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베르네시스(kybernesis, 조타술)

리더십의 어원으로 이해되는 ‘키잡이’의 헬라어는 ‘쿠베르나오(kubernao)’이며, 키잡이의 능력으로서 ‘조타술’은 ‘퀴베르네시스(kybernesis)’이다. 퀴베르네시스는 지금은 ‘방향잡기(steering)’ 혹은 ‘다스리기(governing)’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점에서 조타술로서 리더십은 본래적으로는 ‘노젓기(rowing)’를 넘어서 ‘방향잡기(steering)’와 관련된 능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폴리테이아(politeia)]를 비롯해서 여러 대화편에서 배를 온전하게 이끌어가는 ‘조타술(퀴베르네시스)’을 통치술과 리더십으로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배는 폴리스인 도시공동체(polis)로, 배의 주인인 선주는 민중(demos)으로, 그리고 배를 선주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안전하고 정확하게 이끌어가는 키잡이는 집정관이며 그의 통치술은 키의 조정술(퀴베르네시스, kybernesis – steering, governing)로, 그리고 배의 실무를 담당하는 선원들은 정치가(Politikos)로 비유하고 있다.

“임명된 집정관은 키잡이가 배를 조종하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성문화된 법률에 따라 폴리스를 통치를 해야 하네. 그리고 임기가 지나가면 집정관들을 민회에 출두시켜 의당 감사를 해야만 할 뿐더러, 성문화된 법률이나 오랜 관습에 따라 배를 제대로 조종했는지 여부에 대해 검토해야 하네.(플라톤, [정치가], 298e)”라는 표현을 통해 통치자는 키잡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일뿐더러, 그 임기가 마치고 나면 전체 시민들에게 제대로 키잡이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느지에 대해서 감사를 받고, 꼼꼼하고 깐깐하게 검토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선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임기가 마치고 나서도 감사를 받아야 하는 통치자가 임명될 시점에 청문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해서, 전체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도 리더로서 키잡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플라톤은 키잡이의 역량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배의 키를 잡는데 능한 사람들은 항해술에 능하며 조타술에 능하며 배와 관련된 것들을 아는 사람으로 칭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쓸모 없는 사람으로 비난하네…그가 참으로 배의 키를 잡기에 적절한 사람이 되려면, 계절의 변화, 하늘과 별, 바람 그리고 그 기술에 합당한 온갖 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네…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적지를 향해 온전하게 항해를 위해서는 키를 잘 다룰 수 있는 조타술에 능한 사람이 필요하다네. (플라톤, [폴리테이아], 488b)”

리더로서 키잡이의 역량은 배 자체를 이끌어가는 조타술만이 아니라 행해술에도 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하늘과 별, 바람의 모습과 위치, 방향 흐름에 민감하면서도 그러한 자연의 흐름과 변화에 온전하게 응답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배의 주인으로서 선주들인 시민들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온전하게 항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과 능력은 키잡이라면 응당 내면적으로 구비하고 있어야 할 자질이고 역량인 것이다. “어떤 의사든, 그가 의사인 한은 의사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고 지시내리는 일은 결코 없고, 환자를 위해 치료를 한다. 키잡이와 통치자 역시 키잡이나 통치자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선주와 선원을 위해 즉 통치를 받는 자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고 지시할 것이다. 어떤 통치이든 통치자는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게 된다…왜냐하면 통치는 그것이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다스림인 한에 있어서 다스림을 받는 쪽, 돌봄을 받는 쪽을 위한 최선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플라톤, [폴리테이아], 342d-345e)”

현대 조직에 실천적 적용

플라톤이 말하는 키잡이로서의 리더, 조타술로서의 리더십을 현대 조직에 실천적으로 적용해보면, 우선 리더 자신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소프로쉬네 리더십을 내면화해야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디카이오쉬네 리더십을 구비해야 한다(*소프로쉬네 리더십과 디카이오쉬네 리더십에 대해서는 6월13일 진행되는 공명리더십 워크숍에서 소개됨). 현대 조직에서의 조타술이란 조직의 비전과 전망, 큰 그림을 어떻게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합의하고 공명(resonance)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키잡이 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선원으로서 직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선주인 이사회나 회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되, 직원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동조(conformity)하여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조직의 비전과 전망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하여 정렬(alignment)하는 수준을 넘어서 각 구성원들이 원래부터 열망했던 비전과 전망이 조직의 비전과 전망과 공명을 이룰 수 있도록 조정해가는 것이 리더십이 본질적인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과 조직의 비전 공명을 임팩트 있게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핵심 사업을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일련의 과정들이 리더십의 역량으로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플라톤이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리더십의 핵심은 ‘조직의 가능한 모든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본래적인 존재가치 사이의 공명을 통해 창출된 비전을 임팩트 있게 실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을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그런 리더십을 내면화한 리더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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